top of page

완벽한 결혼에 대하여

황해 @t3ll_th3_truth

“사는 건 좀 어때요?”

 

용산서의 아이콘 한여진에게 매일같이 들어오는 질문은 사는 게 어떻냐는 것이다. 그 질문 자체로 두고 본다면 사실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앞에 들어가야 하는 말 하나를 숨기고 말한다. 그러니까 정확한 의미는 -

 

-황시목 검사님과 사는 건 좀 어때요?

 

인 것이다. 여진과 시목이 살림을 합친지 반년이 조금 넘었다. 사실, 혼인 신고도 했으니까 정확히 표현하자면 결혼한 지 반년이 조금 넘었다. 하지만 여진과 시목은 서로 바빴고 서로 긴 휴가를 낼 여유가 없어서 식을 생략해 대부분이 그냥 단순히 동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결혼생활이요? 어휴, 검사님이 얼마나 챙겨주는데요~”

 

그때마다 여진은 그들에게 지금 자신이 하는 것이 결혼생활임을 다시금 강조하곤 했다. 모든 이가 느끼듯 누군가와 같이 사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일단 혼자 사는 것보다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데다가 감정 표현이 익숙하고 능숙하지 않은 사람과 같이 사는 것은 생각보다 심플하고, 그저 그랬다. 어릴 적 한여진이 생각했던 것만큼 무척 로맨틱하지는 않았다. 환상 속의 결혼생활은 아침에 함께 눈을 뜨고 입을 맞추며 하루를 시작하고, 함께 아침을 먹고 서로의 출근길을 배웅하며 서로 일을 하고 저녁에 들어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함께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지만 여진과 시목은 서로 너무 바빴다. 초반에는 나름 그랬던 것 같은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서로의 일에 정신이 없어 놓쳐버리는 일이 잦았다. 그래, 용산서 사람들이 많이 배려해줬었지. 여진은 처음을 생각하며 강력반 사람들을 힐끔 쳐다보았다. 휴대폰 화면이 반짝였다. 시목의 연락이다. 어쩐 일이지? 오늘 같이 저녁 먹는 날인데. 불안한 마음이 스쳐 지나갔다.

 

[ 오늘 조금 늦을 것 같습니다. ]

 

일주일에 두 번있는 저녁 같이 먹는 날인데, 늦는다니. 불안한 느낌은 항상 틀린 적이 없다. 예상했지만 그래도 기운이 쭉 빠져버리는 탓에 사건 파일이 무질서하게 펼쳐져 있는 테이블 위로 엎드렸다. 요즘 계속 기분이 이렇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지금 내가 황시목과 결혼을 했다는 것, 시목일지 몰랐지만 남은 평생을 같이할 사람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 아직도 낯선 게 무엇이 문제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만난 지는 일년이 넘었고 결혼한 지 반년이 넘었는데 아직 존대를 쓰고 있는게 문제인가? 아니면 집에 흔한 결혼사진 하나 없는 것? 상상하던 그런 결혼생활이 아니기 때문인가? 그래도 반지는 있잖아. 손을 들어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곱게 자리 잡고 있는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무척이나 황시목같은 디자인이다. 나쁜 말은 아니고, 그냥 무심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진의 취향이 화려한 것도 아닐뿐더러 비싼 큐빅을 박아넣기엔 자신의 직업은 너무 몸으로 뛰는 것이라 잃어버릴까 매일 전전긍긍하긴 싫었으니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냥, 시목 같다고. 손을 한 번 쳐다본 여진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래, 조금 외로워서 그런 거겠지. 요즘 사건 때문에 시목은 너무 바쁘고 자신은 정신없는 탓에 그런거 겠지, 싶어서 마음을 가다듬고 엎드린 몸을 일으켰다. 생각이 너무 많으니까 일단 일을 하자. 오늘 뭐 해야 하나- 더 밝게 입 밖으로 내뱉고 널부러진 사건 파일들을 뒤적였다.

 

퇴근합니다- 짧은 인사를 모두에게 건네고 나와 집으로 향해 걸었다. 오늘은 일부러 차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오늘이 정말 드물게 찾아오는 걷고 싶은 날이었으니까. 여진은 느리게 발걸음을 옮기며 잠시 시목을 생각했다. 시목은 좋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심통해도 자신에게는 무척이나 예쁜 웃는 모습도 많이 보이고 쉬는 날에는 같이 하는 활동을 찾기도 한다. 여기서 더 바라는 건 욕심인 걸 잘 알고 있는데 왜 그게 쉽지가 않을까?

한숨을 푹 내쉬고 문 앞에 서서 들어갈지 조금 더 돌아다닐지 잠시 망설였다. 뭐 어쩌겠어, 더 다녀봤자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다녀왔습니다- 문을 열고 썰렁한 집을 향해 인사를 하고 그냥 아무렇게나 현관 앞에 드러누웠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기운을 빼앗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것 마냥 몸이 무거웠다. 가방을 옆에 던지듯이 내려놓고는 그냥 천장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있는 탓에 현관문 센서등이 한참 켜져있다가 꺼졌다. 어둠이 집안을 채웠다. 집이 너무 조용해 여진이 들을 수있는 건 본인의 숨소리 뿐이었다. 적막이 가득차니 더욱 외로워졌다. 결혼을 했는데 외로웠다. 예전에는 이런 걸로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누군가가 있는데도 외로우니까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눈물이 흐를 것 같아 양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울음을 삼켰다. 머리로 진정하는 동안 진정하지 못한 몸이 떨려왔다. 오한이 들어 몸을 길게 쭉 폈더니 현관등이 다시 켜졌다. 어두운 집안에서 유일하게 밝은게 세상 사람들에게 모두 알릴 것 마냥 여기로 주목하라 하는 것 같았다. 손을 내리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눈물이 멈출 듯 멈추지 않았다. 다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틈 사이로 들어오던 빛은 잠시, 이내 어둠으로 가라앉았다. 긴 숨을 내뱉었다. 일어나서 씻고 저녁 먹어야지, 하고 생각을 했지만 쉽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게 잠시 그대로 누워 있었을까, 누군가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번호를 누르고, 들어오는 소리가 너무 익숙한 누군가의 것이라 여진은 의아했다. 분명 시목은 늦게 들어온다고 했는데- 생각하던 찰나,

 

“ 여기서 뭐 하고 계십니까? 이렇게 바닥에 누워서.. ”

 

익숙한 목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시목이다. 여진은 애써 참았던 눈물이 그 목소리에 주체할 수 없이 밖으로 터져버렸다.

 

“ 아니.. 정말로 무슨 일 있습니까? 울어요? ”

 

시목이 신발을 벗어두고 누운 여진을 달래 일으켜 앉혔다. 그리고 품속으로 끌어안아 도닥였다. 시목의 주저하지 않고 나오는 행동에 여진은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작은 스킨쉽도 어색해하던 사람이 이렇게나 달라졌다. 여진은 시목의 발전된 행동에, 그러니까- 사랑이 기반이 되지 않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시목의 행동에 더욱더 서럽게 소리내 울었다. 시목을 작게 원망했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 자신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사랑하지 않을 사람이 아닌데, 그저 표현이 서툴 뿐이라는 걸 아는데도 욕심을 내버린 자신이 너무 바보같아서 시목의 품 안에서 모든 것을 토해내듯 울었다. 시목의 어색하지만 다정한 손길도, 왜 그러냐며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도 모두 이렇게 좋은데. 이렇게나 좋아서 결혼하기로 결심한건데. 멎을 생각이 없는 듯했던 눈물도 점차 진정이 되어 서서히 그쳤다. 시목이 조심스럽게 여진의 손을 내리고 눈을 마주했다.

 

“ 눈이 다 부었어요. 내일 출근 어떡하려구요. ”

 

어색한 농담을 뱉으며 시목이 여진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내었다. 다정한 손길에 다시금 눈물이 터질 듯 했지만 애써 꾹 참았다. 둘 모두의 꼴이 우스웠다. 현관에서 주저앉아 울고 있는 자신이나, 들어오자마자 울어버린 자신 때문에 겉옷을 벗지도 못하고 달래고 있는 시목이나. 자꾸 움직이는 둘 때문에 현관등이 켜졌다가 꺼졌다 켜지길 반복한다. 우스웠다.

 

“ 오늘 늦게 들어온다고 했잖아요. ”

“ 아, 그게.. ”

“ 뭐야.. 거짓말? ”

“ 아닙니다. ”

“ 근데 왜 일찍 들어왔어요? ”

“ 걱정돼서요. ”

“ 응? ”

“ ..답장이 오지 않아서 무슨 일 있는 줄 알았습니다. ”

“ 네? 내가 답장 안했어요? ”

“ 네. ”

 

휴대전화를 꺼내어 얼른 확인해보니 정말 답장을 하지 않았었다. 그래도 이게 뭐라고, 일까지 미뤄가며 집으로 오나? 퉁명스럽게 입술을 삐죽이다가도 자신의 작은 변화에 놀라 달려왔다고 생각하니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는 노릇이라, 여진은 시목의 손을 꼭 잡았다. 문자를 보내고 자신의 반응을 신경 쓰며 자꾸 휴대폰으로 시선이 갔을 시목을 생각하니 그냥 여태 했던 생각들이 모두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 뭐 먹고 싶어요? 내가 해줄게. 장은 안 봐왔지만. ”

“ 음.. ”

“ 아니면 오랜만에 포장마차 갈까요? 소주랑 라면이랑 우동, 시켜놓고. 딱? ”

“ 네. 좋습니다. ”

 

시목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식힌다며 얼른 화장실로 들어가 빠르게 세수를 했다. 요동쳤던 마음이 진정되고, 머릿속이 정리되는 듯했다.

 

여진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너무 결혼이라는 것에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보다 결혼이라는 것은 단순할지도 모른다. 무조건 기억에 남아야 하고, 무조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특별함만을 강조하며 결혼이라는 단어에 과한 기대감을 욱여넣었다.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그게 당연한 줄 알았지. 시목에게 결혼은 여진만큼 기대가 큰 특별한 행사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어쩌면 결혼이라는 것은,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 평생을 함께하기로 한 약속일 뿐이다. 그 약속을 종이로 옮기는 것이 혼인 신고서,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 결혼식. 단순하게 생각하면 결국 그런 것뿐인데. 여기까지 생각하자 결국 여진을 외롭게 만든 사람은 바로 한여진, 자신이라는 걸 알았다. 시목은 언제나 똑같이 그 자리에 서 있는데, 여진 혼자 기대감에 부풀어 마음대로 외곡해 버렸으니까.

 

시목의 손을 꼭 잡았다. 미안해서, 고마워서, 그냥 여러 가지로 좋아서. 그냥 이 순간을 사랑하고 싶어졌다. 손에 남은 외로움대신 시목의 온기가 전해지는 이 순간. 여진에게는 지금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 바로 이 순간 손이 맞닿아있는 이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 그 것이면 충분하니까.

© 2019 by Soulmates Collaboration

Background photo by

bottom of page